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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2003)

3년 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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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원하는 것, 그리고 남자가 원하는 것, 하룻밤의 정사, 배우자 유혹하기, ...

목차만 보면 이 책이 어느 서점에서 심리학이 아닌 연애 코너에 비치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도 이해가 될 법 합니다. 제목이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자극적이기도 한 "욕망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re)"는 진화 심리학 분야의 기반을 닦은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의 저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남녀간의 사랑이 범 문화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류 공통의 감정이며 절대 서구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 아님을 강조하며 조금은 로맨틱하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인간에게 동물과는 다른 지위를 부여하고 싶은 이들에게 다소 불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짝짓기 전략은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흔히 진화를 이야기하면 생존 상의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선택을 떠올리지만, 실은 번식 상의 이득을 위해 발생하는 선택압도 있습니다. 다윈은 이를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고 불렀는데, 가장 흔한 예가 수컷 공작의 깃털입니다. 크고 화려한 깃털은 분명 수컷 공작을 포식자의 눈에 잘 띄고 도망가기 어렵게 만들어 생존을 불리하게 할 것이 뻔합니다 - 때문에 마치 자연 선택의 반례처럼 보이죠. 그럼에도 화려한 깃털이 암컷에게 보다 잘 선택될 수 있는 번식 상의 이득이 있기에 크고 화려한 깃털로의 선택압이 작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개념을 보다 고등한 복잡한 지적 능력을 보유한 동물인 인간에게 적용해 인간이 연애 짝짓기 과정에서 보이는 심리적 기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연애할 때 무의식 중에 펼치는 각종 심리적 전략들, 이를 테면, 남자는 왜 연애 초기에 여자에게 자신의 겉옷을 덮어주고 싶은지, 왜 여자는 비슷한 나이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데 남자는 시종일관 젊은 여자를 찾는지, 왜 여자들이 목소리가 굵은 남자를 선호하는지, 왜 여자가 남자보다 "뇌가 섹시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왜 미인 대회 수상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씬해 짐에도 허리-엉덩이 비율은 일정한지, 왜 우리는 얼굴이 대칭인 사람을 미인이라고 인식하는지 등 흥미로운 소재를 진화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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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여자들이 꾸미는 이유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주장을 반박할 때 쓸만한 통계 자료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찐~한 19금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소재들, 예를 들면,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 만난 부부의 침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남녀의 혼외 정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남자에게 여자의 배란기를 눈치채는 능력이 있는지, 왜 여자가 평상시 선호하는 남성과 배란기에 선호하는 남성이 다른지, 특히나 남자들이 궁금해 하는 여성의 오르가즘에 대한 이야기까지 통계와 생물학 실험에 기반하여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또, 질투에 기반한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성폭력 등의 이야기도 그와 같은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으며, 동성애 등 아직 설득력 있는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부분도 솔직하게 고백하며 지금까지 나온 여러 가설을 소개해 줍니다.

책을 고를 때 번역서라면 저자가 좋은 경우에도 섣불리 구입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 아마도 전공서를 통해 어처구니 없는 번역을 접한 상처가 제게 남긴 방어 기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저자인 데이비드 버스에게 지도를 받은 분이 번역하여 단어 대 단어의 옮김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 의미에서 의미로 옮겨진 책입니다. 때문에 번역서 임에도 상당히 매끄럽게 읽히는 편입니다.

절과 장이 나뉠 정도로 장문의 글을 써본 분은 알겠지만, 책을 쓰는 입장에서 주제가 전환되는 시점에 두 주제를 연결 짓는 것이 보기보다 어렵습니다. 때문에 어떤 책을 보면 절이나 장이 넘어갈 때마다 저자가 그 둘을 연결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여 동감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진화 심리학의 많은 연구 결과가 단순히 나열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절적한 곳에서 매끄럽게 이어지며 하나의 큰 이야기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가 책의 앞 부분에서 소개하듯 진화 심리학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는 자연주의적 오류(오류라는 표현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지만...)와 반자연주의적 오류가 있습니다. 자연주의적 오류는 종종 폭력을 부르는 남성의 성적 질투에 진화적인 기원이 있으니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사고 방식입니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남자는 원래 그래. 그러니 받아들여." 정도가 되겠네요. 반대로, 반자연주의적 오류는 인간의 본성에 숭고함을 이입하여 다른 해석을 거부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우리 숭고한 인간이 그럴리 없어!" 정도라고 할까요?

뭔가 멋있게 이름을 붙여놔서 문과적 지식에 무뇌한 문외한인 저같은 사람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종종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인지를 못하고 있을 뿐 경우에 따라 저도 둘 중 하나에 물들어 있지 않나(그렇다고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런 생각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재미있는 이론 하나를 소개 받는다는 느낌으로 귀기울이면 분명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 없습니다.